단옷날 창포물에 머리를 감았다는 풍습조차 요즘 세대들에게는 교과서에서나 등장하는 낯선 이야기고 보면 창포하면 연못가에 주로 관상용으로 심는 꽃창포를 떠올리게 되는 건 아닐까.
꽃창포는 붓꽃과의 식물로 꽃 안쪽에 노란 줄이 있는 홍자색의 화려한 꽃을 피운다. 더러 흰색, 노란색의 꽃이 있다. 그러나 이런 꽃창포는 단옷날 등장하는 창포와는 모양은 비슷하지만 거리가 먼 식물이다.
창포는 천남성과의 식물로 창포속에는 창포와 석창포가 있다.
석창포는 단옷날 등장하는 창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둘 다 물을 좋아하고 식물체에서 독특한 향이 나는 것은 비슷하지만 창포가 주로 호수나 연못가의 습지에 자생하는데 비해 석창포는 냇가나 산간 계곡 등 주로 흐르는 물가에 분포한다.
석창포는 상록성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중부이남에 주로 자생한다. 한겨울에도 푸르고 싱싱한 잎줄기가 그대로 살아있어 겨울철에 사람들의 주목을 더 끄는 식물이다.
창포가 길이 60~90cm정도로 뿌리에서 곧게 서서 자라는 반면, 석창포는 이보다 작아 길이 30~50cm정도이며 옆으로 퍼져 자라는 습성이 있다.
잎은 긴 칼모양으로 끝이 뾰족하다. 석창포는 잎의 너비가 2~8mm로 10mm내외인 창포 잎에 비해 가늘다. 또한 석창포 잎에는 잎맥이 없다. 반면 창포 잎에는 가운데 도드라진 줄(중맥)이 뚜렷하여 석창포와 구분이 된다.
봄철에 달리는 꽃은 잎 모양의 긴 꽃대에 소시지 모양의 꽃차례로 달린다. 창포의 꽃차례가 길이 5cm내외로 새끼손가락 굵기에 끝이 뭉툭한 반면 석창포의 것은 길이가 좀 더 길고 가늘다.
옛날에 흔했다는 창포가 요즘에 귀한 것처럼 석창포 또한 예전에 남부지방의 냇가나 계곡에 흔했다고는 하나 막상 사진에 담으려고 찾아 돌아다니니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제초제와 농약, 가축분뇨 및 생활하수 등으로 수질이 급격이 악화되어 자생지가 급속도로 파괴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언젠가부터 약효가 좋다하여 남획되어진 것도 한몫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쨌든 어렵게 지리산자락의 한 조그만 계곡에서 한겨울 싱싱함을 뽐내고 있는 석창포 무리와 만났다. 띄엄띄엄 물가 바위틈에 뭉쳐 붙어 자라고 있었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상류 폭포 위에 몇 개체가 보이더니 한참을 내려간 곳에서 다수가 발견되었다. 근 1km에 걸쳐 계곡을 오르내리며 살펴보았는데 개체수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사람들에 의해 하천정리가 이루어진 곳에서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뭉쳐 자란 잎을 헤치면 마디사이가 촘촘한 녹색의 바깥뿌리가 빼곡하게 박혀있는 것이 보인다. 땅속에 박힌 뿌리는 붉은색을 띠고 뿌리마디 간격이 다소 넓다. 잔뿌리가 성글게 달려있다. 뿌리를 캐어보면 그 모양이 늙은 닭발이거나 지네모양을 하고 있다. 한방에서는 이 뿌리줄기를 잔뿌리를 잘라내고 잘게 썰어 말려 약으로 이용한다.
북한에서 펴낸 「동의학 사전」에서는 석창포에 대해,
‘맛은 맵고 성질은 따뜻하다. 심경, 심포경에 작용한다. 정신을 맑게 하고 혈을 잘 돌게 하며 풍습과 담을 없앤다. 약리 실험에서 건위 작용, 약한 진정 작용, 진통 작용 등이 밝혀졌다. 또한 달임약은 암세포를 죽인다는 것이 밝혀졌다. 의식이 혼미한데, 건망증 등에 주로 쓰며 소화 장애, 귀가 먹은데, 목이 쉰데, 마비증, 부스럼, 헌 데, 습진 등에도 쓴다. 하루 2-6그램을 달임약으로 먹는다.’ 고 기록하고 있다.
최진규씨는, ‘석창포는 뇌신경의 피로를 풀어 주는 효과가 탁월하다. 뇌신경이 피로하면 정신이 흐릿해지고 귓속에서 바람소리나 물소리 같은 것이 들리며 구토가 나고 밥맛이 떨어지고 소화가 잘 안 되며 기억력이 없어지고 현기증이 자주 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럴 때에 석창포 뿌리를 먹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기억력이 좋아지며 마음이 안정된다. 수험생이나 머리를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매우 좋은 약초이다.’ 라고 석창포를 소개하고 있다.
석창포를 다릴 때에는 쇠그릇을 피하고 향이 없어지지 않도록 짧은 시간에 다리는 것이 좋다. 석창포는 차처럼 달여 먹는 외에도 목욕물에 담가 쓰거나 베갯속에 넣어 쓰면 좋다고 한다.
홍만선은 「산림경제」에서 석창포의 재배에 대해 논하면서 ‘밤에 등불을 켜고 책을 볼 때 한 분재나 두 분재를 옆에 놓아두면 등잔불 연기를 흡수하여 연기가 눈을 쓰리게 하지 않는다. 또한 맑은 날 밤에 석창포 분재를 밖으로 내놓았다가 아침에 잎사귀 끝에 맺힌 이슬방울을 거두어 눈을 씻으면 눈을 밝게 하는데 오래도록 계속하면 한낮에도 별을 볼 수 있다.’ 라고 하였다.
머리의 피로를 풀어주고 정신을 맑게 하며 눈을 밝게 하는 석창포!
옛날 선비들이 문방사우(文房四友)에 석창포를 더하여 문방오우라고 부르며 가까이 한 이유를 오늘에도 되살려 가까이 두고 아껴 가꾸어보는 것은 어떨까.